축구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반영해주는 거울 3편

축구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반영해주는 거울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축구는 잡다한 사회문제들과 아무런 연관 없이 존재하는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축구는 막대한 경제적 이해관계와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정략이 개입되는 장소로서 존재한다. 축구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반영해 주는 거울이다.

 

새로운 차원: 쇼비니즘과 국가주의

축구는 인근 마을들 사이의 케케묵은 경쟁의식을 되살렸다. 마을들 간의 경기들은 대부분 비이성적인, 조상 전래의 반감을 해소하고 패권에 얽힌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가 되었다. 한편으로 전통적 대항전들은 지나친 감정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었으므로 만일에 대비해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우발적 폭력은 고의적인 것이 아니다. 쇼비니즘은 ‘훌리가니즘(hooliganism)’이 아니다. 하나의 도시에 여러 개의 클럽이 있을 경우 이를테면 튜린의 유벤투스와 토리노, 밀란의 A.C. 와 인터처럼 경쟁의식이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대립에 기인한 것일 때, 개신교인 글래스고 레인저스와 카톨릭교인 셀틱의 경우처럼 경쟁의식이 종교적 갈등에 기인한 것일 때, 그 격정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쇼비니즘은 국제경기에서는 국가주의를 자극했다. 응원하는 사람들은 자국의 국가를 들으며 벅찬 가슴을 느꼈던 것이다. 관중들은 국가를 따라 합창하기도 했다. 독일 연방팀과 같은 몇몇 팀들은 선수들까지도 국가를 따라 불렀다. 남아메리카 사람들과 그들 대표 팀의 일체감은 가히 전설적이었다. 1950년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에게 겪은 패배는 브라질 국민에게 국가적 비극이었다. 반대로 1970년의 대멕시코전 승리는 축구를 중심으로 한 유례 없는 국민적 단결을 이끌어냈다. 리오에서 범국민적 행사를 개최해 축하한 이 승리는 가난한 나라의 복수처럼 여겨졌다. 경기장에서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다. 1964년,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320명의 사망자를 초래하는 폭동으로 끝났다.

 

정치의 개입

가장 작은 마을 단위에서도 스포츠 협회는 명사들의 대결장이 되었다. 스포츠 협회가 권력에 이르는 기반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공식 표명을 통해 팀의 소속 도시, 팀의 대표자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려 노력하던 명사들은 컵과 같은 주요 대회에서 팀이 승리할 때 비롯되는 이득을 거두려고 애썼다. 왕, 여왕, 대통령들은 컵의 결승전에 참석해 유명 선수나 팀 운영자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스탠리 매튜스는 엘리자베스 2세의 후의를 입어 스탠리 경이 되었다. 시장들 또한 시의 축구보조금을 결정할 때 선거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했다. 축구의 정치화는 한층 더 직접적인 양상을 띠기도 했다. 스페인의 F.C.바르셀로나는 지역의 경쟁 클럽인 에스파뇰과 레알 마드리드에 대항해 오랫동안 반프랑코주의를 표방했다.

그들의 경기는 당시 체제가 가두에서 벌어지는 것을 막았던 정치적인 경쟁을 대리하였던 것이다. 카탈루냐인은 수상 카레로 블랑코의 암살보다 1974년 레알에게서 거둔 5대 0의 승리를 진정한 정치적 전환의 시작으로 받아들였다. 혁명세력은 선수들의 명성을 이용했다. 베네수엘라의 혁명세력은 자신들을 알리고 집권체제를 와해시키기 위해 디 스테파노를 납치, 감금했다.

 

축구, 갈등의 원인인가 평화의 전달자인가?

초창기의 F.I.F.A.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국제 경기들은 국가들 간의 관계들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맺고 있었다. 대개의 경우, 정치적 관계가 스포츠 관계를 결정했고 그 역도 성립했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1월 11일에 프랑스와 벨기에의 기념 경기가 벌어졌던 것도 그러한 맥락에서였다. 이는 두 국가가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것을 기리는 경기이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기들은 오랫동안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펼쳐졌다. 예를 들어 1952년 콜롱브의 스타디움에는 프랑스를 응원하는 한 관중이 수용소복을 입고 나타났다. 1969년의 월드컵 예선 경기는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외교관계 단절을 초래했다. 1930년, 우루과이는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자국의 국제적인 위상을 확립하기 위해 축구대회를 창설했다. 1978년 아르헨티나의 독재정권이 월드컵을 통해 정부의 합법성을 인정받으려 하자 민주국가들은 대회 참가 거부 캠페인을 벌였다. 프랑스의 좌익은 경기참가를 극구 고집하는 극우파와 대립했다. 네덜란드의 선수들은 비델라 장군에 대한 경례를 거부했다.

 

참조: 축구는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반영해주는 거울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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